조훈현씨는 오랫동안 국내의 모든 바둑 타이틀전들을 석권함으로써 다른 기사들을 숨도 못쉬게 만들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바둑황제라고 불렀다. 그가 이렇게 한국바둑계를 평정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뛰어난 속도에 있었다. (이하의 내용은 바둑을 조금 밖에 모르는 필자의 어처구니 없는 대착각일 수도 있음) 아무도 그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는 속도로서 다른 사람을 압도하고 승리를 구가하였는데, 누구도 조훈현을 이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때 이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호랑이굴에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창호였다. 이창호는 조훈현의 눈에 띄어 그의 내제자가 되었다. 그는 사부의 집에서 사모가 지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는 사부의 서재에서 하루종일 사부를 무찌를 방책을 연구하며 칼을 갈고 갈았다. 그러기를 수년, 드디어 이창호는 스승의 아킬레스건을 발견하였다. 그때로부터 바둑황제 조훈현은 그의 어린 내제자에게 어이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년내에 10개도 넘는 바둑 타이틀들을 이 어린 호랑이에게 거의 다 빼앗기게 되었던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국내 타이틀은 거의 다 빼앗겼지만 조훈현은 세계의 바둑 황제로서는 건재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일본이나 중국기사들은 조훈현의 약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이창호가 발견한 조훈현의 아킬레스건은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이창호가 결코 조훈현의 속도에 말려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식으로 바둑을 두어 나갔다. 다른 모든 기사들이 발빠른 조훈현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정신을 못차리고 나가 떨어질 때, 이창호는 천천히 자기의 걸음을 걷고 또 걸었다. 스승의 빠른 걸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처럼 동요하지 않고 황소처럼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조훈현은 저만치 앞서 가다가도 남들처럼 허덕거리며 자기 뒤를 바짝 따라오지 않는 이 아이가 도대체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가 하고는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다가 그만 실족하고 자멸하고 마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신학하며 목회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중요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서구신학은 걸음이 빠른 조훈현과 같다. 이런 사람을 그냥 뒤쫓아 가다가는 결국 황새를 좇아가는 뱁새처럼 우왕좌왕하다가 길을 잃고 말 것이다. 서구신학을 극복하는 방법은 이창호처럼 우리의 페이스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목회현장에서 신학해야 한다. 왜 우리와는 아무 관련없는 그들의 삶의 현장, 그들의 목회현장에서 나온 그들의 문제와 더불어 씨름하고, 그들의 결론을 정답으로 여기고 추종해야 되는가?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요,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허락하신다. 우리의 눈으로 성경을 읽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의 신학을 형성하고 우리에게 적합한 목회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2001년에 작성한 글인데 지금봐도 괜찮게 여겨집니다. 다만 이창호와 조훈현은 요 몇년 사이에 다소 또는 상당히 약화된 감이 있다는 것은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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