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Wagner. Apostles & Prophets : the foundation of the church. 임수산역. <사도와 선지자>. 서울: 쉐키나출판사, 2008. (원서 출판년도는 2000년).
* 교단의 행정가들에 의해 의사가 집행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영적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라 볼 수 있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행정가들의 의사결정이 각 해당 관할구역에 속한 교회들의 삶과 사역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18)
내가 믿기로 하나님께서는 1990년대부터 사도들을 일으켜 세우셔서 지금의 변화의 때를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고 계신다. (21)
21세기의 도약대로서 16세기의 개혁신학(성경말씀의 권위, 이신칭의, 만인제사장설), 18세기의 웨슬레의 경건주의(웨슬레가 기독교에 가져온 신선한 흐름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관점이었다), 19세기 근대 선교사 운동. (20-25)
1900년대 오순절파 운동, 1950년대 전도운동, 1960년대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향한 긍휼, 1970년대 강력한 기도운동. (25-29)
기도운동과 연관되어 일어나는 일 중에 가장 주요한 발견은 중보자의 직임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30)
1980년대는 선지자 직임의 회복. 세 가지 핵심직임은 사도, 선지자, 중보자. (31)
1990년대는 사도 직임의 회복 (32)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란 20세기의 마지막에 전 세계적으로 개신교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이다. ... 사실 전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신사도적인 교회들이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35)
신사도적 개혁운동이 가져오는 변화는 신학적 차원에서는 미미하지만 대부분은 성도들의 삶에 일어날 변화이다.(35)
사도들에게는 비범한 권위가 있다. 1) 영적 은사가 있고, 2) 분명한 부르심이 있고, 3) 뛰어난 성품의 소유자다. 사도들은 책망받을 일이 없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4) 사도들에게는 따르는 자들이 있다. 5) 비전이 있다. 사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성령의 말씀을 듣게 될 때, 그 사도의 권위는 급격히 증대되고, 그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된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되었고,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는 로고스(logos)의 말씀 자체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주님의 뜻을 드러내사 우리에게 구체적인 방향을 주고자 하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레마(rhema)의 말씀을 지칭한다.(54-55).
계시를 받는 두 가지 방법: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사도들에게 전달된다. 하나는 사도 바울과 같이 직접적으로 계시를 받는 것이다. (55) 사도들이 계시를받는 두 번째 방법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받는 것이다. (59)
사도들에게는 정해진 영역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고전 9:1-2). 사도의 사역이라는 것은 정해진 한계(영역)를 넘어가면 그 효율성이 떨어진다. (61) (* 고전 9장 말씀에 대한 와그너의 해석은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고린도교인들은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도는 누구에게나 사도이지 특정한 영역에서만 사도고 다른 영역에서는 아니라고 하는 것은 바른 해석이 아니다. 와그너가 왜 이런 해석을 하는지 잘 알 수 없다.)
사도의 다양한 영역: 교회적 영역, 기능적 영역, 지정학적 지리적 영역.(62-63)
사도의 은사란 다수의 교회들을 영적인 면에서 놀라운 권위로 다스리는 리더십 전반을 말한다. (68)
수직적 사도(vertical apostle), 수평적 사도(horizontal apostle)
수직적 사도는 보통 많은 수의 교회 또는 선교단체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사도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사도 바울, 디모데, 디도, 에바브로디도.
수평적 사도는 다른 사도들에 대한 권위를 가진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 그는 민주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내 말을 들으라고 했다. (79) (* 내 말을 들으라고 한 것을 내 말에 순종하라는 뜻으로 와그너는 해석했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석 참조 필요. 내 생각으로는 내 의견을 들어봐 달라는 뜻이다. 야고보가 회의의 주재자로서 전체 의견을 수렴하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지, 다른 사도들을 순종케 할 권위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다.)
전통적인 교회와 새로운 사도적 교회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각 개인에게 부어주시는 엄청난 권위의 위임이다. (79)
하이폰으로 연결된 사도들: 사도적 사도들, 예언적 사도들, 전도자적 사도들, 목회적 사도들, 교사적 사도들. prophetic-apostle...
일터의 사도들. 일터사역(marketplace ministries)
(* 구태여 사도라는 타이틀을 붙일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사람들을 분발시키는 효과를 일으키겠지만 결국 바람 빠진 풍선의 결과가 생기지 않겠는가? 오히려 사도적 목사, 사도적 선교사 등등으로 족하지 않을까? 아니면 다스리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와그너의 주장은 교회의 리더십을 혼란시키는 결과가 야기될 것이다.)
사도들은 선지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사도들에게는 개인 중보자들이 필요하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걸출한 사도는 바울과 베드로이다. 그들은 또한 중보기도자들과의 사역의 좋은 본을 보여 준 지도자들이다.(95) 사도들은 인정과 확증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교회의 터라는 사실은 이제야 인지되고 있다. (* 그러나 이것은 결국 성경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지, 특정한 사람들이나 직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억압들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된 베드로라고 서신서를 열고 있는 바울과 베드로의 역할 모델을 보며 주도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사도들을 인정하고 확증하는 일들이 사도 자신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만, 그 운동이 지속적으로 생기를 얻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몸의 나머지 구성원들이 (공식적으로도) 사도들을 인정해야 한다. ...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언급된 직임들을 직함으로 부른다는 개념은 원칙적으로 거부할 것은 아닌 것이다. ... 목사라는 직임 역시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에 회복되었다. 즉 2000년 교회 역사 가운데 목사라고 정의된 역할이 일반화된 것은 2000년 역사 중 5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에 덧붙여서 교회가 전도자라는 직임을 인정한 때는 찰스 피니(Charles Finney) 시대에 이르러서다. 즉 150년 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다. ... 그렇기에 몇 사람들이 이 시대의 사도직임에 대항해 논쟁하기로 한다 할지라도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 ... 오늘 날 믿는 이들은 성령께서 오늘날의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수동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에 대항해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방법들 중 하나는 우리가 사용해 왔던 것 이상으로 사도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적 이라는 형용사도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 형용사를 명사화해서 사도적인 사람들이라는 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사도를 발견할 때면, 그를 누구누구 사도라고 부르며 그를 인정하고 확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99-100)
사도들에게는 열린 의사소통 채널이 필요하다(자신을 따르는 자 및 동료사도와의 의사소통). 사도들에게는 기능적 책임관계가 필요하다.
교파주의로의 회귀를 피해야 한다. 카리스마의 일상화현상을 방지해야 한다. 이 현상은 한 개인에서 그룹으로 최종적 권위가 이동한다는 것이다.(111) 이에 대한 와그너의 처방전: 각 네트워크 산하에 두는 교회 수의 한계를 정한다. 50-150개의 교회들. 지속적으로 카리스마를 개발하라. 네트워크 안에서 다른 사도들을 세우는 것이다. 사도네크워크를 배가한다. 나눈다는 것. (112)
이 책의 근본적인 논제는 교회의 통치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대로 견고하게 제 자리를 찾기 전에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교회의 모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를 다스리는 최우선적 은사들이 있다면, 에베소서 4:11의 말씀을 따라 보건대, 사도들과,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들이다. (117) ... 사도와 선지자라는 이 두 직임이 사도 시대의 종결과 함께 그 존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전히 매우 불편한 일이다.(118)
사도들이 1990년대나 되어서야 인지되기 시작한 반면, 선지자들은 1980년부터 두루 알려지기 시작했다. (118)
나는 신사도적 원탁회의 구성원들을 통해 2000년 4월 28일에 공식적으로 사도로 임명받게 되었다. (129)
신학대학원에서 오래 가르쳐왔던 기적종식론신학에서 벗어난 후에 나는 오늘날의 교회에서 선지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학문적인 신학적 구조를 개발했다. 예언 사역에 대해 찬성하는 편에 있던 신학자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빈야드 무브먼트의 창시자 존 윔버(John Wimber)를 1975년 풀러교회성장연구소에서 교회성장자문위원으로 초청. 빈야드 사역의 가장 큰 혁신은 1989년 존 윔버가 마이크 비클(Mike Bickle), 폴 케인(Paul Cain), 그리고 캔자스 시티의 예언자들과 연결될 때 일어났다.
10/40창에서 40/70창으로. 터키의 에베소는 하늘 여신의 중앙 본부와 같은 곳으로 간주. 유럽지역의 기독교의 불을 끄는 주범이 하늘여신.
선지자는 사도에게 복종한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말씀하신다. 선지자는 사도에게 말한다. 사도는 판단하고 평가하고 전략을 짜고 실행한다. 선지자는 사도에게 복종한다. 진정한 사도와 선지자가 되기 위해선 겸손해야 한다.
나는 25세였던 1955년에 그리스도인 사역자로서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나의 진짜 사역은 내가 68세 되던 1998년에 시작된 것 같다. 그때 나는 31년간 세계선교학을 가르쳐 온 풀러 신학대학원을 사임하고, 와그너 리더십 인스티튜트(Wagner Leadership Institute)라는 학교를 시작했다. ... 교수진을 이루는 사람들은 성공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전도자들과, 목사들과 교사들이다. WLI에서 그들의 임무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치중하기 보다는 학생들의 사역을 위한 비전과 기름 부으심을 전수하는 것이다. (186)
존 윔버에게 부족했던 것 한 가지는 당시(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현대적 사도의 은사와 직임을 인정하는 데에 있어 주저했다는 것이다. (206)
1990년대 초반 마이크 비클은 캔자스 시티에 캔자스 시티 펠로우십이라는 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에는 몇몇의 개인 예언사역자들의 사역의 기반이 되었다. 이 모임은 차차 성장해서, 밥 존스(Bob Jones), 폴 케인(Paul Cain), 존 폴 잭슨(John Paul Jackson), 짐 골(Jim Goll) 외에 다수의 사역자들이 포함되었다. (208)
사도의 책임원리가 되는 것 중 하나는 무브먼트 가운데에 질서를 잡고, 적절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212)
존 윔버는 우리가 지금 신사도적 개혁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의 진정한 사도이며 개척자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213)
한 사도가 감당할 수 있는 선지자의 수는 오직 제한된 인원일 때에만 효과적인 관계가 일어날 수 있다... 이상적인 숫자는 25명이다. (215)
* 이 책을 읽고난 느낌: 현존하는 세계교회에 대한 애정이 없다. 현재의 세계 교회에 대한 분석과 비판 후에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말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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