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와 바닷가 소년.
소년은 작은 손으로 바닷물을 움켜서는 미리 모래를 파서 만들어 둔 구멍에다 부어넣고 있었다. 아이가 동일한 동작을 계속하는 것을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물었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저는 지금 미리 파서 만들어둔 모래 구멍에다 바다를 옮기고 있어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소년의 어리석은 행동을 중지시키려고 말했다. “어떻게 이 많은 양의 물을 이 작은 구멍에다 옮겨 담을 수 있겠나?” “아우구스티누스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무궁한 신비를 단지 인간의 말로 기록된 책에 다 담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세요?” 당시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을 저술하고 있었단다.
무한한 하나님을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눈높이를 맞추어 우리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셔서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그 대표적인 계시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친근한 것들이 하나님의 계시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A. McGrath의 <천국의 소망> 한 부분을 읽으며)(070110-19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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