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북한인권특사 레프코위츠

경회성 2005. 10. 2. 19:50

실망스런 북한인권특사 회견   2005/09/11 
 
 
지난주 목요일(9월8일) 미국의 북한인권특사가 첫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오후 3시반에 국무부 브리핑실에서 첫 기자회견을 한다고 갑자기 연락이 와 부리나케 달려갔다. 북한인권특사는 작년 10월 발효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임명된 대사급 직책인데, 거의 10개월 동안 차일피일 하다가 최근에야 공식 임명됐다.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고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이 레프코위츠 특사는 올해 43세로, 나이보다도 훨씬 젊어보였다. 체구도 크지 않았고 머리 앞쪽이 벗겨져 있었다. 그는 한눈에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큰 로펌의 변호사로,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연간 100만 달러(10억원)이상의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그런데 기자회견이 끝나고 국무부를 나서는 길에 국무부 정문앞에서 어떤 사람이 황급하게 택시를 잡아 타길래 보니 조금전 기자회견을 한 레프코위츠 특사였다.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번다는 잘 나가는 변호사이면서 대사급 특사인 그가 혼자서 가방을 메고 택시를 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앞으로 많은 뉴스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의 관심대상이 될 인물이다. 하지만 약 1시간 동안의 첫 기자회견은 실망스러웠다. 그는 변호사답게 말을 청산유수로 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그것이 처음부터 왠지 마음에 걸렸다. 북한인권문제는 그 자신의 말대로 "매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런 문제를 다루는 사람은 좀 과묵하고 원칙적인 게 좋다는 생각을 나는 갖고 있다. 물론 이건 인상학적 평가다.

 

그러나 그런 첫 인상에서 받은 느낌은 기자회견이 진행되면서 갈수록 굳어졌다. 레프코위츠 특사는 북한인권문제에서 가장 핵심적 사안인, 강제수용소 철폐문제, 식량지원의 투명성 제고문제, 중국내 탈북자 북송저지문제, 탈북자의 미국 난민신청 허용문제 등에 대한 질문에 답변은 길었지만, 뭣하나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 깊이 검토해 봐야할 중요한 문제다"는 식으로 말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그가 북한인권특사로 상근직이 아니란 점이다. 그는 국무부 내에 사무실을 두고 있고, 대사급 대우를 받으며, 보좌직원들도 갖고 있다. 벌써 200만 달러의 업무비용을 올해 예산에서 배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로서 자신의 본업을 하면서 '부업'처럼 북한인권특사 활동을 하게 된다.  북한인권상황의 심각성과 절박성과는 뭔가 맞지 않는 일이다. 이 부분은 워싱턴의 많은 북한인권운동가들도 지적하는 대목이다.

 

이것이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지금 북한에 대해 이상한 저자세를 취하고,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과 상관이 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권문제를 정치화시켜왔다. 북한인권특사 임명을 연기한 것도,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거론을 회피하거나 북한 지도자인 김정일에 대한 말의 수위를 크게 낮춰온 것도 북한의 눈치를 본 결과였다. 북한은 미 국무부와 백악관 대변인, 혹은 대통령이나 고위관료가 김정일을 자극하는 한마디만 하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반격을 했고, 약속된 회담을 걷어치워 버리곤 했다. 미국은 이에 겁을 먹었다.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말도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그처럼 북한의 태도에 이눈치 저눈치를 보는 게 요즘 미국의 신세다. 어쩌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조차 이렇게 되었는지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다고 6자회담에서는 인권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해서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지금 워싱턴에서 만나는 한반도 전문가들중 이렇게 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실제로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북한인권문제를 북한 핵문제 회담의 안팎에서 강력히 제기하는 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압박하고 유도하는 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북한의 공갈에 눈치를 보는 미국의 저자세는 한국에서 전염된 것이 분명하다. 워싱턴의 한 외교관은 이를 "미국 대북정책의 한국화"라고 했다. 동맹국인 한국이 사사건건 북한에 절절매면서 미국은 한국의 눈치에다 북한의 눈치까지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지금 한국과 미국 정부는 김정일을 독재자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에 대한 해법에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식으로 풀더라도 '도덕적 명확성'은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독재자를 독재자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은 이미 그 독재자와 타협한 결과로써 도덕적 명확성을 잃었다는 뜻이다.

 

구소련 강제수용소 출신인 나탄 샤란스키가 자신의 책 '민주주의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독재자라도 우호적이라면 그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평화와 안보가 달성된다고 믿는 것은 넌센스다."

지금 우리나라의 행동이 그렇다. 샤란스키는 이렇게도 말했다. "공포사회가 쇠퇴를 지연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자국민 통제수단과 에너지가 고갈되면, 공포사회는 기생충처럼 다른 나라에 들러붙어 자원을 빨아들인다." 역시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미국은 과거 구 소련에 대해선 이렇게 하지 않았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고, 젝슨 베닉법 같은 법을 통해 소련의 인권문제를 국제사회의 지원과 연계시키면서 강력히 압박했다. 그 결과 소련은 점차 문을 열게되었고 결국엔 개혁-개방의 길을 걸으면서 공산체제가 붕괴되었다. 지금 북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다.

 

샤란스키는 인권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 명확성'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레프코위츠 특사도, 자신이 맡은 문제들은 "도덕적으로 명백한 것(morally unambiguous)"이라고 했다.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이렇게 보는 것이 옳은지, 저렇게 보는 것이 옳은지, 헷갈림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북한주민 2000만명이 처한 상황은 정말 용납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북한인권문제는 흑백처럼 명확한 문제다"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레프코위츠 특사는 보다 분명하게 얘기해야 한다. 지금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그렇다. 지금 전 세계에서, 북한인권문제를 다루는 임무만을 전담하도록 정부가 공식적으로 임명한 경우는 미국의 이 북한인권특사밖에 없다. 그마저 정치화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조선일보 허용범 워싱턴특파원의 블로그에서 베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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