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스크랩] 칼빈과 한국교회

경회성 2011. 3. 8. 11:26

* 부산장신대, <전통과 해석>(2007-2009),21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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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과 한국교회”

최태영(영남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은성강좌(부산장신대)

2009년 10월 29-30일

서언.

칼빈 탄생 오백 주년을 맞이한 2009년 올해는 칼빈을 조명하고 칼빈의 신학사상을 탐구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풍성했던 해로 기억이 될 것 같다. 종교개혁기념일(10월 31일)에 즈음하여 그것은 절정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올 한 해만 해도 칼빈에 대한 연구와 강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루어졌는데, 이런 상황에 다시 칼빈을 말한다는 것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기 보다 오히려 맥빠진 느낌을 주기에 십상일 것이다. 하여 나는 칼빈을 말하되 비교적 새로운 관점에서 말하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할 것이다. 하나는 오늘의 한국교회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칼빈을 읽는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오늘의 한국교회라는 특정한 콘텍스트에서 칼빈을 말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칼빈의 특정한 신학 주제들을 다루기 보다는 칼빈의 삶 전체와 아울러 그의 신학사상 전체를 총괄할 때 나타나는 그의 사람됨을 그려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칼빈이라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한 사람을 한국교회와 연관시킴으로써, 그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발견하고자 한다. 간단히 말하면 칼빈은 자기 시대에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런 그의 사람됨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I. 하나님의 사람

칼빈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 이란 표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주저인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서문에서 “건전한 표는 인간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라고 썼다. 또 그 대작을 마무리하면서 맨 마지막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 찬양’이 칼빈의 마음속에 항상 가득 차 있었다. 칼빈은 구호만이 아니라 실제로 삶, 사역 그리고 모든 학문적인 사색에 있어서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것을 그의 목표로 삼았고 그것에 철저했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은 인간의 영광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죄인으로서의 철저한 인간이해와 관련되어 있다.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는 것과 철저히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것이 결합되어 있다 “가장 위대한 일은 이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생각하고, 말하고, 묵상하고, 행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성별되고 헌신되었다는 것이다.” 칼빈은 인간을 사랑했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것은 배격했다. 자신의 신학과 삶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이 중심이 되게 하였고, 인간이 중심적 위치로 옮겨지는 것을 철저히 부정했다. 하나님의 영광은 심지어 자신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사돌레 추기경(Cardinal Sadolet)에게 보내는 답신에서 칼빈은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칼빈의 평생의 적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자유주의자들이었다. 자유주의자란 율법폐기론에 가까운 사상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인본주의자들로서 하나님의 법과 다스림을 배격하고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추종하는 자들이었다. 칼빈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도 넓은 의미로 본다면 인본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교황과 교회제도와 교회의 권위를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칼빈은 인본주의화된 기독교를 신본주의로 돌이키려 했다.

칼빈의 평생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실현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적과 싸울 때에도 하나님이 승리할 것을 바랐다. 그래서 그의 제자이자 동역자인 베자(Beza)는 칼빈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 공격을 가했던 원수들은 다 하나님 그분께 싸움을 건 것이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칼빈은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하는 전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싸웠다. 하나님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도시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라고 믿었다. 칼빈은 후배 목회자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든지 여러분이 위험으로 위협을 받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십시오.”

1564년 임종 시에 칼빈은 시편 39:9절 말씀을 암송하였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지상에 살았던 어떤 그리스도인 못지않은 업적을 남겼지만, 일생을 돌이켜볼 때, 칼빈은 자기가 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도 바울이 한 고백처럼(고전 15:10) 자기가 아니라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다는 고백인 것이다. 칼빈은 유언으로 자기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지 않도록 했다. 그리하여 그의 뜻대로 실제로 매우 소박하게 치러졌다고 베자는 전한다. “5,6개월 후 제네바를 처음 와보는 학생들 몇이 칼빈의 묘를 가보고 당황했다. 그들은 거대한 기념물과 같은 무덤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거기서 본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무덤과 똑같은 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어서도 자기가 중심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칼빈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스스로 중심에 서지 않으려 했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였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신학과 삶의 목표 뿐 아니라 그 동력도 인간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성이나 의지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지혜와 의지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주관하게 하자.” 그의 신학사상의 특징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는 데 있다. 후세에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예정론조차도 철저히 하나님 영광에 봉사한 교리였다. 인간의 구원보다 하나님의 영광에 우선을 두는 그의 신학의 특징이 이중예정론에 반영된 것이다. 그가 예정론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이다.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해 주셨으므로 구원받는 것이지 인간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버림받는 자도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하고 버림받는 그 자체도 하나님의 영광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중심적인 고려가 전혀 없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의만 고려되고 있다. 칼빈의 예정론이 신학적인 비판의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여기에 나타난 그의 철저한 하나님 중심주의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한국의 교회는 사람과 돈 그리고 권력의 힘이 너무 크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이 사람, 돈, 권력의 장막에 가려져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오늘의 많은 교회와 지도자들이 거대한 행사를 기획하고 거행하기를 좋아하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지 특정한 사람의 영광이 드러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특정한 사람의 영광, 특정한 교회의 영광, 특정한 학교의 영광, 특정한 국가의 영광이 드러나고 박수갈채를 받지만, 정작 영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퇴색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행하셨다기 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행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적어도 칼빈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칼빈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에만 목표를 두고, 사람이나 돈이나 권력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그 섭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다운 사람일 것이다.

II. 경건한 삶의 신학자

칼빈은 자신의 『기독교강요』가 ‘경건의 대전’(summa pietatis)으로 불려지기를 원했다. 아마도 중세의 가장 영향력있는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는 토마스로 대표되는 중세 스콜라신학을 줄기차게 비판했는데, 무엇보다 그것이 추상적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해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신학은 경건을 위해, 경건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그는 경건을 하나님 지식의 목적이요 조건이라고 보았다. 경건이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사랑이 결합된 것인데,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앎으로써 오는 것이다. 칼빈이 생각하는 참 종교 또는 기독교의 특징은 경건이다.

루터가 칭의론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것에 비하여 칼빈은 구원론에 있어서 칭의보다 성화를 더 중요시한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것은 그의 『기독교강요』의 편제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중생, 성화)의 원리를 칭의보다 앞세운 데서 발견할 수 있듯이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인다운 참된 삶의 원리는 무엇인가? 『기독교강요』3권 6장에서 10장이 이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자기부인(self denial)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기 부인이다. 자기라는 것이 항상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십자가를 지는 삶(bearing the cross)이다. 이것은 고난을 당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고난을 통해 무엇보다도 겸손의 덕을 함양하게 된다. 칼빈에 의하면 이것이 현세에 대한 경멸과 내세에의 묵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기부인의 일부다. 칼빈에 의하면 고난은 우리의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감사와 평온함으로 고난을 당해야 한다. 셋째는 내세에 대한 묵상(meditation on the future life)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현세에 마음을 두지 말고 내세에 마음을 두는 것이라 하였다. 내세를 묵상함으로써 현세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칼빈이 좋아하는 하나의 성구는 누가복음 21:28이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 머리를 든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현세에 대한 선용(enjoying the present life)이다. 이것은 앞서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를 벗겨준다. 즉 혹시 칼빈이 염세적인 태도를 가르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 말이다. 그는 오히려 현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감사함으로 누리기를 권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섬김을 위해 사용하기를 권한다. 이 점에서 칼빈의 영성은 중세 로마교회 수도원의 영성과 대조된다. 후자는 세상으로부터의 퇴각을 지향하는 데 비하여 전자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은 가장 좋은 길을 현세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의 영생을 명상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들은 모두 경건한 삶을 지향하고 있다.

경건한 삶의 신학자로서의 칼빈의 면모는 그가 선행을 특히 강조한 데에서도 발견된다. ‘오직 믿음’(sola fide) 교리가 가진 일반적인 오해는 그것이 행위, 혹은 선행을 경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결코 그렇지 아니함을 역설한다. 그는 스스로 밝히기를 『기독교강요』에서 중생을 먼저 말하고 칭의를 가볍게 논한 이유는 믿음은 선행을 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편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그는 선행을 참된 믿음의 증거라고 하였다. 선행은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의 마땅한 도리이므로 만약 선행을 경시한다면 그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칼빈에 있어서 선행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경건한 삶의 신학자로서 칼빈을 이해하고자 할 때, 권징에 대한 그의 태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장로교회의 조직에서 당회 혹은 장로직분은 권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장로직은 교인들의 영적, 도덕적 삶을 감독하고 훈련하는 것에 일차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특별히 권징제도 및 권징기관으로서 제네바 컨시스토리(consistory)를 두어 그리스도인다운 경건한 삶을 도모하였다. 권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 하는 것은 1541년 제네바 재입국의 조건으로서 교회의 권징권 보장을 요구한 데서 잘 나타난다. 칼빈은 1538년에 제 1차로 제네바 개혁운동에 참여했고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2년여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가장 큰 이유는 제네바시민들의 영적 도덕적 삶을 너무 많이 간섭하였기 때문이다. 거룩한 교회, 거룩한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칼빈의 열정이 시민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이로부터 3년 후 제네바 시민들은 칼빈을 필요로 하여 다시 부르게 되었는데, 그때 칼빈은 3년 전의 실패를 염두에 두고 무엇보다도 확실한 권징권을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나를 당신들의 목사로 원하신다면, 여러분들의 생활의 무질서를 고치셔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망명생활하는 나를 다시 부르시는 것이라면 여러분 가운데 만연해 있는 범죄와 성적 방탕함을 청산하십시오... 내 생각에 복음의 가장 큰 적들은 로마의 교황도, 이단도, 유혹하는 자들도, 독재자도 아니고 바로 ‘나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선한 행위가 없는 죽은 믿음이 무슨 쓸 데가 있겠습니까? ... 순전한 권징(훈련)을 다시 세우소서.

이 중에서, 복음의 가장 큰 적으로서, 로마 교황보다도, 이단보다도, 유혹자들보다도, 독재자보다도, ‘나쁜 그리스도인들’을 지목한 것은 칼빈의 태도가 어떠했는가를 절실히 보여줄 뿐 아니라,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볼 때도 참으로 아찔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말한 ‘나쁜 그리스도인들’이 누구겠는가? 교회에 출석만 하지 실제는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한국교회는 도덕성, 윤리성에 있어서 지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작년 기윤실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일반 국민들의 한국개신교에 대한 신뢰지수는 가톨릭과 불교에 비해서 월등히 낮다. 3년 전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10년 동안의 종교인구의 변화에서도 3개 종교 중에서 개신교가 가장 성장이 더딘 종교로 드러났고, 특히 가톨릭교와는 현저한 차이로 뒤떨어져 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많은 연구와 발표가 있었지만, 한국교회의 성장이 정체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다름 아닌 도덕성, 윤리성 문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눈에 개신교는 불경건하고, 사회적으로 무책임하며, 정직하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비쳐지고 있다. 국민들이 가톨릭교에는 도덕 윤리적인 면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그래서 한 동안 우리 개신교에서는 가톨릭교를 본받는 운동이 조용하게 진행되어 왔는데 그것은 특히 영성에 있어서 그러했다. 가톨릭교에는 영성이 있고 우리에게는 영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가톨릭교로부터 영성을 배우는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신학교에도 영성신학 분야가 앞다투어 설립되면서 영성을 가르치는 교수들을 초빙하는 등 어찌하든지 가톨릭교에 뒤지지 않는 영성 훈련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차제에 가톨릭교의 영성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칼빈의 영성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바른 길이고 개신교다운 길이라 생각한다. 칼빈의 영성의 핵심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경건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칼빈을 본받아 경건의 신학, 경건한 삶을 추구하고 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도덕성 제고를 위해서 또 한가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권징제도이다. 오늘날 권징제도는 사실상 마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시절을 보면 권징제도가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었다. 1930년대 한국의 대표적 목회자였던 주기철 목사께서 시무한 어느 교회의 당회록에는 권징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게 나온다. 권징이 살아있을 때 교회가 도덕윤리적으로 건전한 교회가 될 수 있고, 그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며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교회가 되게 함으로써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도 이바지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칼빈의 가르침을 좇아 속히 권징제도를 회복시키고 당회의 권징적 기능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목회자와 장로들이 도덕적 영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고, 아울러 권징제도를 회복시킨다면 한국교회의 경건성은 크게 증진되리라 여겨진다.

III. 성경 말씀의 제자

칼빈은 성경의 사람이었다.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의 영감과 절대적 권위를 믿고 성경 해석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가 성경주석이며 강해설교이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과 신학의 규범적 근거는 성경이다. 교회의 교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침의 기초였다. 그는 신비주의자는 아니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신비는 인정하였다. 성경에 때때로 발견되는 서로 모순되는 교리들에 대해서도 그대로 병렬시키면서, 자신이 그것을 조화시킬 수 없다 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만족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교리가 그러했다. 그는 성경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예정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성경에 있는 대로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다. 엄밀히 분석하면 그 둘은 서로 충돌하는 교리이지만 칼빈은 그것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지 않고 성경에 있는 그대로 두었다. 이런 칼빈은 베자의 눈에 변함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칼빈이 처음에 가르쳤던 교리에 끝까지 굳게 서 있었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칼빈의 신학이 시종일관 변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가르쳤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칼빈은 우리가 ‘성경의 제자’(pupil of Scripture)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성경은 하늘의 교리이므로 참된 종교의 빛을 받기 위해서는 성경의 제자가 되지 않으면 참되고 건전한 교리를 극히 일부분이라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성경의 제자'란 말은 칼빈이 애용한 독특한 표현이다. 그는 마치 성경을 살아있는 선생님처럼 인격화시키고 있다. 혹자가 개신교를 종이 교황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비판하는데, 그 말의 긍정적 의미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칼빈에게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로마가톨릭교인들이 교황을 섬기듯이 개신교인들은 성경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제자는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을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참된 이해가 시작된다. 완전하고 원만한 신앙, 하나님에 대한 일체의 올바른 지식은 다 순종에서 나온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기를 가르쳤는데,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하늘로부터 직접 듣는 것처럼, 성경의 기원이 하늘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생각될 때에만 비로소 성경은 신자들로부터 완전한 권위를 얻게 된다고 가르쳤다.

칼빈은 성경과 성령의 관계에 대하여 탁월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은 성령의 학교이며 동시에 성령은 그 학교의 선생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지식(신학)은 성경이라는 객관적 계시와 성령이라는 내증증거자에 의해서 알려진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이중으로, 즉 안에서는 그의 영으로, 밖에서는 그의 말씀으로 일하신다.” 칼빈은 성경의 초자연적 기원을 의미하는 성령의 영감을 믿고 가르쳤을 뿐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 데에도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의 내적 조명을 주장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또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성령의 내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우리에게 증언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성령이 또한 성경에 의해 검증된다는 가르침이다. 칼빈에 의하면 사탄의 영이 성령의 이름으로 침투하지 않도록 성령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인식되기를 원하신다고 하였다. 우리들 안에 있는 성령의 증거는 “성서에 의해서 검토되어야 한다. 그것은 성서에 예속된다.”

이처럼 칼빈에 의하면 말씀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성경과 성령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가야 한다. 성령은 말씀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계시므로 말씀이 존경을 받을 때 성령은 자신의 권능을 발휘하신다. 그런데 만약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성령을 높이는데도 불구하고 성경이 경홀히 여김을 받는다면 이것은 뭔가 매우 잘못된 현상이다. 두메르그(Emile Doumergue)는 이것을 잘 지적하였다. “사람들은 점점 더 성령의 증거를 숭상한다. 그러나 거기서 그것과의 대칭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기록된 말씀, 즉 성경의 권위는 등한시되고 있다... 오히려 기록된 말씀이 성령의 증거의 재판관이다.” “성서를 재판하는 것은 우리들 가운데 있는 성령의 증거가 아니다. 정반대로 성서가 우리들 속에 있는 성령의 증거를 재판한다.” 성령의 증언이 성경에 예속된다는 칼빈의 이 가르침은 오늘날 유행하는 성령운동에 대하여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우리들에게 제공한다.

한편 칼빈은 우리가 성경의 제자가 되어야 하지만, 성경에 대한 지나친 사색과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경계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 외에는 어떠한 곳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 외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을 것, 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써야 하겠다” 이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표현이 『기독교강요』 안에 들어 있다. 어떤 파렴치한 자가 물었단다.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나? 칼빈이 대답한다. 하나님은 그런 호기심 많은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 인간의 모든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칼빈은 그것을 우리의 겸손을 위한 장치로 해석한다.

우리는 무익한 사색에 빠짐으로써 독자들이 신앙의 단순성에서 떠나 방황하지 않도록, 경건의 규범이 명령하는 그 한계를 지키도록 계속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성령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항상 우리를 가르치고 있지만 그러나 건덕상 거의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침묵을 지키든가 혹은 가볍게 또는 대충 그것들을 다루실 뿐이다. 그러므로 알아서 유익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는 기꺼이 단념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 이외의 그 어떤 모호한 문제에 대하여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심지어는 알려고도 하지 않도록 겸손과 진실에 관한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건덕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내어 명상하도록 끊임없이 힘써야 하며, 호기심에 빠지거나 무익한 것들을 탐구하는데 마음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칼빈은 가르친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성경 말씀만으로는 안 된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성령운동, 영상예배, 음악예배 등 현대문화적 기제에 의존하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옥성호는 그의 책에서 현대 교회가 말씀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고, 심리학, 마케팅, 엔터테인먼트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잘 고발하였다. 그러나 칼빈이 오늘 한국교회에 다시 온다면,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가길 권면할 것이다. 신학이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는 학문이 되기를 권면할 것이다. 그리고 설교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고 성경의 재해석이 되기를 권면할 것이다. 한 마디로 성경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기를 권면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에 의존하는 대신에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성령운동, 현대의 첨단 기술문화와 연계된 영상과 음악 등을 통한 문화선교 쪽으로 활로를 찾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들은 어두움의 세력에 의하여 얼마든지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검은 말씀이다(엡 6:17) 성령님은 말씀,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증언하며 활동하신다. 성경으로 검증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운동이며, 영상 내지 음악 등은 하나님의 말씀을 질식시키기 쉽고, 우상화 가능성이 다분한 위험한 문화로써 주의해야 할 대상이다. 성경이 제공하는 보이는 말씀은 세례와 성찬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서가 아니라 다른 데서 보고 듣고자 하면 미혹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 믿음은 이미지를 보는 데 있지 않고 말씀을 듣는 데 있다. 이 세상에서는 어디까지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늘에 가서야 마침내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며 영원히 살 것이다.

IV. 소심한 목회자

칼빈의 생애는 자료의 부족으로 상당한 부분이 알려지지 않거나 부정확하게 알려져 있다. 이유는 칼빈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그의 소심한 성격과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라는 겸손 때문으로 보인다.

베자는 칼빈의 기질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칼빈은 선천적으로 다소 소심한 기질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늘 그에게 굳건하게 설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임종을 앞두고 제네바와 인근의 목사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그는 ‘정말로 나는 선천적으로 수줍어하고 소심합니다’라는 말을 두 세 번 반복했다.”

칼빈의 소심한 성격은 그의 인생의 전환기에 대한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1536년 6월, 파리에서 짐을 챙겨서 스트라스부르로 이주하기 위해 제네바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동생들과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당시에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 황제 사이에 전쟁이 재개됨으로써, 그들은 제네바를 경유하는 우회로를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접한 파렐(William Farel)이 칼빈이 머무는 숙소를 방문하였다. 파렐은 칼빈에게 제네바에서 함께 사역할 것을 간절히 요청하였으나 칼빈은 완강히 거절하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칼빈을 설득하던 파렐이 마침내 칼빈에게 화를 퍼붓는 일이 발생했는데, 칼빈은 이 때의 일을 시편 주석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몇 가지 특별한 연구를 위해서 자유를 얻기 원한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 그의 간청이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는 나에게, 이렇게 큰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에 내가 돕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휴식과 평안을 저주하실 것이라는 저주의 말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 말에 너무나 놀라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는 계속하던 여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후에 칼빈은 말하기를 “그의 음성이 마치 높은 보좌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과 같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파렐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제네바에 머물기로 했는데, 그것도 신학을 가르치기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임무를 맡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신학적 지식을 전하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로 여겼던 것이다.

2년 후 제네바 사역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추방당하게 되었는데, 그때 스트라스부르크의 개혁자였던 부처(Martin Bucer)가 칼빈을 끌어들이기 위해 끈질기게 요청했다. 이 때도 칼빈은 거절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내심으로 이제는 제네바에 오기 전에 가지려고 계획했던 휴식과 연구를 위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의 제의를 거절했지만 마침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의 일을 칼빈은 친구 틸레(Du Tillet)에게 보내는 서신(1538년 10월 20일)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고 조용히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탁월한 종, 마르틴 부처가 이전에 파렐이 했던 것과 유사한 권고와 단언으로 나를 다른 직책으로 다시 불러내었다. 그가 내 앞에 요나의 예를 제시할 때 나는 다시 가르치는 짐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요나의 신세가 되는 것을 겁냈던 것이다.

소심하고 겁 많은 칼빈의 모습은 그로부터 3년 쯤 후에 제네바에서 다시 그를 불렀을 때도 여전히 나타난다. 칼빈은 제네바로 돌아가는 것 보다는 백 번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제네바로 다시 가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겠다는 것이 아마 나의 선택일 것입니다... 제네바만큼 싫은 데가 하늘 아래 다시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의 공포에 질렸으면서도 제네바에서의 하나님의 도구라는 자기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는 결코 원하지 않았던 일을 겁 많은 소심함 때문에 받아들이고야 말았던 것이다.

칼빈은 루터와 쌍벽을 이루는 위대한 종교개혁자로 평가받지만, 그는 의외로 소심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주 많은 사상가이며 유능한 의사였던 세르베투스(Servetus)를 삼위일체론과 유아세례론을 거부하는 이단으로 정죄하고 처형하는 일에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 및 자유주의자들과 치열한 투쟁을 벌였던 칼빈이었으므로, 그가 소심한 목회자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여 얼른 수긍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그가 그만큼 소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담대한 전사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그의 강함과 담대함은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에는 담대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담대한 사람은 큰일을 잘 벌이기도 하지만 또한 일을 크게 망쳐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담대하고 의욕이 많은 사람이 사실은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성적으로 담대하고 적극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너무 쉽게 그것을 인간의 일과 뒤섞어 버릴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의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감행할 가능성도 많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소심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는 적격이라 할 수 있다. 소심하고 유약한 사람이 성령에 감동될 때 하나님의 일을 순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담대한 사람을 갖다 쓰시기 보다는 칼빈처럼 소심한 사람을 들어 쓰시기를 즐겨하신다. 담대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맡기기에는 위험하다. 하나님의 뜻을 캐묻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기보다는 자기 생각과 자기 능력으로 일을 저질러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제네바에서나 스트라스부르크에서나 종교개혁운동에 참여하기를 꺼려한 소심한 사람 칼빈이 마침내 위대한 개혁자로서 쓰임 받은 것은 자기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의지 때문이었다.

역사의 도중에 있는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도 당연히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개혁의 기수가 되리라 하고 서둘러 나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의 의지를 꼼꼼하게 물어보고 그 의지에 철저하게 따를 때 진정한 개혁운동이 될 것이다. 개혁운동을 망치는 것은 항상 인간의 의지였다. 인간의 의욕이 과다하여 하나님의 의지를 앞설 때 실패하게 된다. 차라리 칼빈처럼 소심한 것이 좋지 않을까. 소심한 사람은 비교적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기를 잘하기 때문에 덜 위험하다. 그들은 큰 비전이나 야망이 없이 그저 남의 아래서 참모나 월급쟁이나 하는 타입이지만, 이런 사람도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사역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책은 소심한 사람을 불러서 대담한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담대해지려 하지 말고 차라리 소심한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담대한 사람으로 변하기를 희망하자. 부활하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기를 성급하게 나서지 말고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기다리라 하지 않으셨는가?(행 1:8).

V. 가난한 자를 배려한 휴머니스트

칼빈은 당대 최고의 교의학자요 성서학자요 설교자임과 동시에 교회정치가요 교회행정가로서,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직무에 있어서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 시민사회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직무에 있어서도 탁월한 목회자였다. 흔히 칼빈을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열렬한 충성을 바침으로써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인간미가 없는 인물로 여기곤 하지만 그것은 오해일 뿐이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놓을만큼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따라, 인간 특히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고 배려한 따뜻한 휴머니스트로서의 칼빈의 모습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는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데에 재물문제, 곧 돈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서 교회의 재정지출에 관하여 탁월한 원칙을 세웠다. 각 교회의 형편과 주위의 상황에 따라 조절해야 하지만 대략적인 기준으로서 그는 교회의 수입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재정을 지출하도록 권하였다. 1/4은 목회자를 위해서, 1/4은 교회건물의 수리를 위해서, 1/4은 빈민들을 위해서, 1/4은 타지방과 본지방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마지막 두 단위는 요즘의 언어로 말하면 교회 내 구제 사업과 교회 밖 사회구제사업비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즉 재정의 1/2을 교회와 사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칼빈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제 2차 제네바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1541년에 교회법령(Ecclesiastical Ordinances)을 제정하였는데, 거기에 오늘날까지 장로교회의 직제의 틀이 되는 4가지 직분론이 나온다. 곧 목사, 교사, 장로, 집사직분이 그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4가지 사역, 곧 목회, 교육, 권징, 구제에 대응하여 제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이 집사직분이다. 칼빈은 집사직분을 육적 사역자로 부르며, 교회 내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 등 소외계층에게 현실적 도움을 베푸는 직분으로 이해했다. 비엘러(Andre Bieler)의 연구에 의하면, 집사 제도는 칼빈 당시에 교회 지체들의 물건과 재화들을 교회 안과 밖으로 나눠주는 기관이었다. 집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영적 연대를 보여 줄 수 있도록 경제적 재화가 교회의 모든 지체 가운데 골고루 흐르도록 재확립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기독교강요』에서도 집사의 직분을 구제하는 일을 맡은 사람으로 규정한다. 칼빈에 의하면 집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교회를 위해서 구제사업을 관리하는 집사들과 직접 빈민들을 돌보는 집사들이라 하였다.

고린도 후서 8:13-14 주석에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공평과 균형이 있기를 원하신다. 즉 사람은 아무도 너무 많이 갖거나 필요한 것도 가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자기 재산의 정도에 따라 궁핍한 사람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칼빈은 하나님이 택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두 서로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한 몸을 구성하는 그런 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를 서로 교환하는 것을 전제로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으로 모인다.”

칼빈은 부의 상호유통이 사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만나의 재분배를 한 예로 들었다. 이러한 재분배는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후 8:15)는 말씀대로 차별적인 평등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칼빈은 부자를 일컬어 “가난한 자의 봉사자”라고 했다. 가난한 자들은 부유한 자들의 사랑과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하나님 편에서 보내진 자들이다.칼빈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균형과 공평이 있기를 바라시는데, 곧 각 사람이 그의 자산의 정도에 따라 궁핍한 자와 나눔으로써 아무도 너무 많이 갖지 않고 아무도 너무 적게 갖지 않기를 원하신다.”

한국교회가 내외로부터 받는 비판의 우선순위에 들어 있는 것 하나가 바로 자기교회의 외형적 성장주의이다. 교회수입의 대부분을 교회 자체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의 외형적 성장을 위해서 사용한다. 교회건물이 점점 높아지고 교회부지가 점점 확장된다. 예배당이야 당연하고 교육관까지도 수긍되지만, 교회의 사회복지관, 체육관, 카페, 대형주차장, 죽은 자를 위한 공원 등등 대교회에 걸맞는 시설을 확충하느라 그 많은 교회수입도 항상 모자라는 실정이다. 만약 칼빈이 제시한 원칙에 준하여 우리나라 교회가 예산의 2/4를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우리 사회가 개신교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의 선한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전도의 효율도 매우 높아져서 교회성장에 관한 위기 해소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의 의식이 고양됨으로 말미암아 질적인 성장도 획기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돈은 물질에 속하지만 돈을 사용하는 것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결어.

칼빈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자신과 교회를 통해 온전히 나타나고 그리하여 자기를 포함한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승리하기를 갈망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는 경건한 삶을 추구한 신학자였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곧 경건이야 말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신학과 실천이 경건한 신학, 경건한 삶이 되기를 바랐다. 칼빈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이요 경건한 삶의 신학자가 되게 만든 것은 성경이다. 인간의 이성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성령조차도 성경에 의해 판단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좋은, 철저한 성경의 제자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고, 경건한 신학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원래 칼빈은 소심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 개혁운동에 뛰어들만한 담력이 없었고 큰일을 하기에는 유약하였다. 이런 그를 위대한 개혁자의 삶을 살게 만든 것은 하나님이었다. 그가 소심한 사람이었으므로 오히려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의 순전한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칼빈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따뜻한 가슴을 지닌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하나님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였고,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경제적 정의를 실천하는 일에 신학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앞장섰던 사람이었다.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오늘 한국교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칼빈과 같은 바로 이러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칼빈에게서 배운다면, 먼저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만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경건을 위해 선행을 장려하고, 권징을 올바로 실행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고, 빗나간 성령운동이나 영상문화에서 말씀을 듣는 문화로 돌아가야 하겠다. 또한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나서고 설쳐대기 보다는 차라리 소심한 사람마냥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에만 사로잡혀 활동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돈과 물질로 도우는 것이 영적인 사역임을 인식하고 실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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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제자회
글쓴이 : TaeYo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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