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다석의 주역 이해 (송인창교수의 글, 씨알사상에서 옮김)

경회성 2009. 10. 9. 12:19

송인창 교수는 ?

충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선진유학에 있어서의 천명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전대학교 교수이자 동양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동서철학회, 한국주역학회, 새한철학회,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9년 6월 한국철학회 회장선거에서 차기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저서로는 "주역과 한국역학" "기호유학의 융화정신" "기호학파의 철학사상"(이상 공저), "동춘당 송준길" "오행, 그 신비를 벗긴다"(공역), "불인한 칼" 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주역에 있어서의 감통의 문제" "퇴계 이발설의 역학적 이해" 등이 있다.

평생 삶의 근거지가 된 충청 지역의 유학 연구와, 인간 삶의 변화의 원리이자 항상성의 지표인 "주역"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동아시아 역학의 학술적 구명을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삼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다석의 주역 이해

1. 하느님 계시가 내함된 "주역"  

다석 유영모는 역학을 철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의리역(義理易)과 점쾌중심의 상수역(象數易) 측면에서 주로 검토해오던 기존의 전통적 방법에서 벗어나, "주역"의 사상을 하늘(天, 하느님)의 계시가 담겨있는 텍스트임을 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기실 "주역"의 존재의 의미이자 사고의 원형인 점서(占筮)가 하느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한 의례(儀禮)였다는 점을 통해서도 우리는 "주역"에 이미 초월적일 뿐만 아니라 내재적인 하느님의 존재가 상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성의 권위로 하느님을 이해하려는 자연신학적 한계를 넘어서, 초자연적인 은총의 빛에 의하여 하느님의 신비로움을 파악하는 계시신학의 입장과 지평을 같이 한다.


2. 하늘 중심적 사고(건괘 중심적 사고)

건괘(乾卦)가 상징하는 용(龍)의 강건한 모습을 통해, 인간이 땅적인 삶에서 하늘적인 삶으로 도약(跳躍)을 넘어서 비약(飛躍)해야만 하는 하학상달(下學上達)의 사명을 이야기한다. 이는 인간이 인간 개체생명을 넘어서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우주생명에 대해 가졌던 보편적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다. 바로 주역에서 말하는 ‘하늘과 땅의 가장 큰 힘은 생명창조이다(天地大德曰生)’라고 하는 정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정신은, 다석이 우주생명은 인간의 몸에 이어져 있고 인간은 하늘의 뜻을 보아야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현대인은 하늘(天, 하느님)을 우러러 볼 기회가 별로 없고 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두려고도 하지 않지만, 하지만 주역과 다석은 줄곧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것을 강조한다. 하늘을 보라.


3. 개물성무(開物成務, 인간의 믿음과 사물의 본질을 열어 보이고 사무를 완성함)해야 하는 인간

인간의 믿음과 사물의 본질을 열어 보이고 사무를 완성한다’고 하는  "주역" '계사전'상11의 말을 근거로, 인간이 자신의 책무를 다함으로써 하늘과 땅의 양극성을 이어서 소통시키고 더불어 우주만물의 시작과 완성에 동참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것은 "주역"의 천지인 삼재(三才)사상의 내용일 뿐만 아니라 다석이 인간의 사명을 강조하며 인간은 하늘`땅과 성스러움으로 관계 맺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맥락이 같다.


4. 전언왕행(前言往行, 옛 선현의 말과 행동)과 하느님의 만남

'전언왕행(前言往行, 옛 성현의 말과 행동)과 하느님의 만남’에서는 인간이 ‘개물성무’하는 방법과 궁극적 목표를 심화시켜 논의한다. 그것은 바로 ‘선현(다석)의 말씀과 경험(前言往行)’을 본보기로 삼아 하느님과 성스러움으로 만나고 그 성스러움을 이 땅에 구현하는 것이다.

지혜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배움을 통해서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주역" 대축괘(大畜卦) 대산전(大象傳)에서 그 방법으로 ‘전언왕행’을 제시한다. 그런데 ‘전언왕행’을 배우기 위해서는 겸손과 비움을 통해서 가능하다. 대축괘의 괘상(卦象)은 산 아래 하늘이 있는 모습이다. 하늘이 산 속에 들어 있다.

우리의 몸속에 하늘(천; 하느님)이 들어가 있다. 위에 있어야할 높은 하늘이 아래 있어야할 산 아래로 몸을 낮춤으로써 그 덕을 쌓아가고 서로가 소통한다. 배움은 채우려는 욕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더 많은 가르침이 수용되는 계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낮은 데로 임하소서’, ‘가난한 자의 복’, ‘우리 몸은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말의 의미를 상기하게 된다. 우리는 겸양의 미덕으로 말하고 행동한 선현을 본보기로 하느님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석도 성스럽고 복된 말을 듣고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과 만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