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소위 스타 설교자 유감

경회성 2009. 9. 4. 07:36

* 다음의 글은 기독공보2005년 5월 21일자에 게재된 것입니다. 신문에서는 원래의 기고문이 약간 수정되어 있는데, 그것이 제 마음에 더 들었습니다만 여기서는 원래의 제글을 싣겠습니다. 다만 마지막 몇 문장은 삭제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기독공보의 편집진의 감각이 대단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우리나라에는 출중한 설교자들이 많다. 그들은 큰 교회를 담임하거나, TV나 방송을 통해서 수많은 회중을 대상으로 설교한다. 그들 중에는 스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을 스타 설교자라고 불러본다. 그들이 우리나라교회의 강단을 위해서 기여한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설교를 회중에게 친근한 것으로 만들었다.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교인들조차 설교를 지루하고 따분한 것으로 여기고 있을 때 그들은 설교를 오락 프로그램 못잖은 재미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많은 신자들이 설교듣기를 좋아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의 설교의 가장 큰 특징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개그맨 못지않은 입담으로 설교시간을 즐겁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스타 설교자들이 많이 있는 것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좋은 것도 지나치면 없는 것만 못한 것처럼 스타 설교자들의 영향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먼저 스타 설교자들은 수많은 교인들로 하여금 설교에 대해 왜곡된 이해를 갖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다는 아니겠지만 대체로 그들의 설교는 회중들의 인기를 휘어잡는 쪽으로 방향 잡혀져 있다. 교인들이 듣고 싶어 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전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전하기보다 회중들이 원하는 말을 회중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 보다 사람들에게 좋게 하기가 쉽다. 회중들은 그들의 설교를 들으며 웃고 외치고 박수치며 즐거워한다. 행복해 한다. 설교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설교를 말씀을 섞어 버무린 만담이나 개그 같은 것, 그래서 들을만하고 편리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설교자를 성경을 요리하여 개그맨처럼 전달하는 종교연예인 쯤으로 여기게 된다. 설교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으로 여기는 경외심은 점차 사라진다. 설교는 즐거움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제 아무리 성경적이고 내용이 건실한 설교라도 재미있게 포장되지 않으면 회중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게 되었다. 회중들은 맛있는 설교에 중독이 되어서 영양가 있는 설교는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맛도 있고 영양가도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모든 설교가 다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맛은 있으나 영양가 없는 설교와 맛은 없지만 영양가 있는 설교가 있을 때 대부분의 회중들이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불문가지가 되어 버렸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스타 설교자들이 대다수 동료 목회자들에게 필요이상의 괴로움을 안겨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처럼 설교하지 못하는 수많은 설교자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아마 그들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스타들이 수많은 회중 앞에서 스폿 라이트를 받을 때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씁쓸해하고 있는지를 안다면 그저 좋아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당수의 목회자들은 스타 설교자들처럼 되어 보려고 기도하고 연습하고 특별훈련을 받으며 안간힘을 쓴다. 스타처럼 되어야 교인들로부터 인정받고 교회가 성장된다고들 말하기 때문이다. 자기 교인들이 TV를 통해서 스타 설교자들의 화려한 설교를 듣고 나왔을 텐데 자신의 설교가 너무 비교되어서야 어떻게 권위가 서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 다 뒤로 미루어두고 어떻게든지 그들처럼 설교해보려고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달란트가 다 다른데 아무리 노력한들 그들만한 스타가 되겠는가? 뱁새가 황새 따라가느라고 가랑이가 찢어질 뿐이다. TV만 없었더라면, 스타 설교자들만 없었더라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스타급에 해당되는 설교자들은 동료 목회자들에 대하여 먼저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인간적일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체 목회자들이 일심으로 합심하여 나아갈 때 더욱 빨리 건설될 것이다. 앞서 나가는 몇 명의 스타 때문에 대다수 목회자들이 기가 죽어 뒤에서 주춤거리고 있다면 하나님나라에 막심한 손실이 생길 것이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유서 깊은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교수 출신의 담임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문득 한국교회 설교현장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느꼈다. 그날 선포된 설교는 영양가는 풍부하나 맛없는 설교였다. 목사님은 회중들을 즐겁게 할 의도를 도무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재미있는 이야기는커녕 그 흔한 예화 한편도 없었다. 오로지 주어진 성경에 충실한 설교였다. 속은 깊으나 겉이 별로 화려하지 않은 설교라 할까? 영양가는 풍부하였으나 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회중들의 반응이 자못 궁금했다. 만약 스타 설교자들의 현란한 설교에 중독된 회중이라면 아마도 지겹고 짜증이 나서 몸부림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 설교는 설교 축에 끼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살펴 본 바로는 그 교회의 교인들은 설교에 불만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교회 교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런 일견 무미건조한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꺼이 들을 수 있다면 어찌 수준 있는 교인들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교인들이 가득하다면 그 교회는 참으로 희망이 있는 교회가 아니겠는가?

 

나는 설교를 이왕이면 신자들에게 친근한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엄숙하기만 한 것 보다는 적절하게 재미도 있어서 회중의 긴장을 풀어주는 그런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회중에게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회중을 위로하고 용기를 일으키고 기쁨과 웃음을 주고 희망을 제시하지만 또 때로는 책망하고 좌절시키고 슬픔과 눈물을 주고 회개와 결단 그리고 무조건적 순종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그것을 즐기기 전에 먼저 그 앞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이다. 설교가 재미있어야 하지만, 그 재미는 세상이 주는 재미와는 달라야 한다. 육신적이고 감각적인 재미가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재미여야 한다. 이왕이면 맛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부차적이다. 먼저 영양가가 있어야 하고 다음에 맛을 찾아야 할 것이다. 좋은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에 길들이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길들일 것이다. 영양가 있는 음식에 길들이게 되면 겉 맛이 없어도 영양가라는 속 맛 때문에 진짜 좋은 음식을 계속 찾게 될 것이다. 모든 설교자들이 겉 맛 나는 설교 보다 속 맛 나는 설교를 위해 분투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가 얼마나 창창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