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신의 종교개혁제에 즈음하여 신대원장으로서 쓴 글, 2002년)
485주년 종교개혁축제가 21세기 신학과 목회를 준비하는 신학대학원 학우회와 학생들에게 종교개혁의 정신을 회복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행사가 아니라 종교개혁의 의미를 우리들의 마음에 깊이 되새기는 날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는 슬로간이 요 몇 년 동안에 인구에 회자되었지만 요란한 말뿐이지 내실이 얼마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개혁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여러 가지 시도와 행동이 요란했던 것뿐이지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지식정보, 다원화, 디지털, 게놈, 멀티미디어 등 현시대를 수식하는 현란한 용어들의 등장과 함께 이에 부응하려는 발빠른 노력들이 우리의 내면을 얼마나 불안하도록 휘저어 놓았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유행에 민감한 언어와 지식은 많아졌으나, 뿌리도 없고 깊이도 없는 정체불명의 사상과 행동양식이 우리 사회를 난장판으로 몰고 갈 뿐 아니라, 신학교와 교회까지 침투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본다. 매스미디어의 막강한 권력을 등에 입은 각종 천박한 지식산업의 파편들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의 영혼과 정서가 소리 없이 오염되고 있지나 않은가? 고전적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고 지켜온 숭고한 교의(dogma)들이 막무가내로 무시되고 짓밟히는 것이 작금의 우리 개혁교회의 상황이 아닌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했던 대표적인 교의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로 표현된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개혁교회의 현실을 보면 이 중 어느 하나도 온전하게 선포되고 가르쳐지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유일한 권위로 인정하고 의지하기보다는 사람의 말과 사상을 더 근사하고 매력적인 권위로 여겨 추종하는가 하면, 말로는 ‘오직 은혜’를 늘어놓지만 은혜 위에 자신의 공로를 과시할 뿐 아니라, 그 공로에 부응하는 권력과 이득을 탐하는 현상에다가, ‘오직 믿음’을 금과옥조처럼 여겨 설교하고 가르치지만, 그것을 빙자하여 선한 삶을 군더더기로 치부하고 오히려 불경건을 합리화시킬뿐더러,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구원의 도를 제쳐두고 마치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는 양 기웃거리며, 그것이 21세기의 바람직한 신앙생활의 양식인양 말하는 것 등, 어느 교의 하나 제대로 선포되고 지켜지는 것 같지 않다. 이러니 교회의 가르침과 신자들의 삶이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고매한 믿음의 선배들이 물려준 진리를 경홀히 여길진대 아무리 새 시대에 부응하는 첨단 논리들과 사상들을 운위한들 한갓 사상누각이 아니고 무엇이 되겠는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거니와, 종교개혁을 기념하려면 개혁자들이 갈파했던 근본적인 정신과 그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의 개혁원리도 다름 아닌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부터 확립하지 않는 한 자신을 개혁교회의 신학생이라 자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토대 위에 은혜와 믿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이대로 가다가는 개혁신학사상은 간 곳 없어지고 옛 역사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이 되고 말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성경에 근거한 신앙으로 반듯이 서서 선배 개혁자들이 갈파한 생명의 교의에 뿌리를 내린 깊이 있는 신학과 삶을 향하여 다시 분발하는 종교개혁축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200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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