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1편 공부
시편 제1편: 두 가지 길(the two ways)
1. 복있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말해보자.
1절, 복있는 사람. “happy are those”(행복한 사람)
1)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2) 시편 첫 문장이 행복한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편 제1편만 공부하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3) 행복에 대해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 시가 마음에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행복에 대한 내 생각을 점검해야 한다.
* 성경을 읽을 때는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공감이 있어야 한다. 공감이 일어나지 않으면 기도해야 할 시간이다. 마음 없이 읽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의 태도가 아니다. 이해 또는 아는 것은 먼저 마음이 통해야 된다. 하나님, 성령님과 마음이 통해야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첫 마디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야 하고 행복하기를 원하는 나를 느껴야 한다.
4) 시편 1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팔복선언에 비교된다. 예수님도 거기서 행복론을 먼저 말씀하셨다. 행복한 삶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신 것이다.
5) 칼빈: 원어로 복되다(ashre)는 말은 복수형이고, 사람(ha-ish)은 단수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감탄문으로 보아야 한다. 강조법. 권면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
2. 1절에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고 하였는데, 좇는다, 따른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who do not follow the advice of the wicked"(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follow라는 말이 눈에 띈다.
1) 제자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먼저 누구 또는 무엇의 제자가 된다. 그렇게 따름으로서 그 사람이 된다. 인격이 형성된다. 지금의 나는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따른 결과다. 앞으로의 나는 내가 현재 따르고 있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따르고 있는지 늘 성찰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2)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의 어부에서 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3. 좇지 말라는 부정적인 메시지가 먼저 나오는 이유?
1) 시편 기자의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세상에는 긍정적인 요인보다 부정적인 요인이 더 많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것이 난무한다. 오늘의 한국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므로 먼저 그런 것들을 따르지 말라고 할 시급성이 있다.
2) 칼빈: 불경건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먼저 끊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가능한 일이다.
4. 따르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것, 3가지를 살펴보자.
1) 악인의 꾀는 영어로 advice라고 되어 있는데, 악인의 조언이라! 모름지기 조언이란 좋은 말이어야 하는데, 조언이라 하면서 사람을 망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 많다. 조언을 다 따라야 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2) 조언을 들을 때는 두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는 조언자가 선인인가 악인인가다. 둘은 그 조언의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비록 선인이라 해도 그 내용이 선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인이란 상대적 의미에서 선인이지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없다.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시기를, 선한 자는 하나님 외에는 없다고 하셨으므로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선인도 실수할 수 있다.
3) 상대방이 악인일 경우는 그 조언을 들을 이유가 없다. 혹시 악인의 입술에서도 좋은 말이 나올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는 선한 이에게 다시 물어보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하여 선인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되어야지 악인의 꾀를 따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악인의 의도를 우리가 미리 다 알고 대처하기는 힘들다.
4) 어쨌든 이 세상에는 악인의 꾀가 너무 많다. 들리는 말을 다 좋은 줄 알고 따랐다가는 낭패 보기가 십상이다.
5)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누구와 함께 가는가, 누구와 함께 앉는가가 중요하다. 유유상종이며 유유상종이 된다.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게 되고, 또 어울리면 그런 사람처럼 된다.
6) 칼빈: advice(counsel)은 자기 자신을 공개하지 않는, 은밀한 악. the way는 습관적인 형태. seat는 고집, 완고.
7) Dakes Bible:
악인: rasha. 도덕적 오류. 옳지 않은 것의 근본. 마음, 태도.
죄인: chatta. 정도를 벗어난 행위.
오만: luwts. 말로 범하는 죄.
5. 무엇을 즐거워하는가?
하나님의 법(law, Torah)을 즐거워하며(delight)
1)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한다. 이것은 피조물의 본성이므로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무엇을 즐거워하는가에 있다. 사람의 품격은 그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대상에서 알아볼 수 있다. 천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고 고상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상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자. 돈, 지식, 명예, 쾌락, 권력? 그것이 나의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즐거움의 대상을 업그레이드하자.
2) 복 있는 자의 즐거움은 하나님의 법이다. 거꾸로, 이것을 즐거워하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
3) Torah는 instruction(교훈)을 의미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삶의 안내서로 인류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 전체를 포괄한다.(WBC). 칼빈도 여기서의 율법은 성경전체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성경의 모든 부분은 율법을 드러낸 것 이외의 것이 아니다.
4)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진리요,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당장에는 받아들이고 순종하기 어려워도 가까이 하고 즐거워하게 되면 그 인생은 하나님이 보장하신다.
6. 복 있는 자의 (하나님의 법에 대한) 태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meditate day and night). (즐거워할 뿐 아니라)
1) 묵상은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요 8:31)이라고 하셨는데, 동일한 뜻으로 본다. 주야로 라는 말은 틈이 나는 대로라는 말이다. 낮이나 밤이나 틈만 나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행복의 길이다.
칼빈: 자신의 율법이 순종될 때에만 하나님은 올바로 섬김을 받으시게 된다. 쉼 없는 묵상을 위해서는 율법을 사랑해야 한다. 율법을 참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은 그것을 부지런히 공부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어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기는 하나 주야로 묵상하지 않을 수 있다. 바빠서 그럴 수도 있고, 말씀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적절한 핑계가 될 수 없다. 바빠서 말씀 묵상할 시간이 없는 것은 삶이 영적으로 질서가 바로 잡혀 있지 않다는 증거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생각하는 것이 최우선의 일이 될 것이고, 그와 오래 함께 있게 될 것이다.
7. 3절에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는 무슨 뜻인가?
transplanted tree: 시냇가로 옮겨 심은 나무. 원래는 메마른 땅에 있었을 것을 암시한다. (WBC)
and it bringeth forth all its produce to maturity(from Street's New Liberal Version of the Psalms)
칼빈: 열매가 완전히 숙성하는 것을 가리킨다. 반면 불경건한 자들은 열매를 많이 맺을지라도 완숙에 이르는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8. 3절 “형통하리로다”에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왜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까?
1) 이것을 무슨 신비적인 또는 주문처럼 여기면 안 된다. 말씀이 신통하게 만드는 주문은 아니다.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2) 하나는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그 인격이 변화되면 그 변화된 인격으로 말미암아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수신이면 제가 치국 평천하. 수신이 되면 집에서도, 나라에서도, 세계에서도 잘 하게 된다. 반대로 집에서 새는 쪽박은 나가서도 샌다는 말이 있듯이 그 사람이 잘못되면 어디에서도 문젯거리를 만든다.
3) 둘째는 형통의 비결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묵상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다. 칼빈은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하신다고 하였다. 하나님,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된다.
4) 형통을 기복적인 의미에서 개운치 않은 뜻으로 볼 필요는 없다. 여기서 형통은 인간의 욕심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가 형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만사형통이라는 단어를 생각해야 하겠다.
5) 여호수아의 형통의 비결: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4절,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하였는데, 과연 그러한가?
1)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악인들이 더 잘 살고 형통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두 가지로 이해해야 한다.
2) 첫째는 긴 눈으로 봐야 한다. 악인들의 득세는 당장은 현실적으로 맞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말씀대로임을 알게 된다. 시 73편 읽기.
3) 그래서 결국 이것은 종말론적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5절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사물에 대한 최종 판단은 종말의 시점에 있다. 마지막이 모든 것을 판단한다. 재판에서 1,2심에서 져도 최종심에서 이기면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과 같다.
10. 5절의 “심판, 의인들의 모임(congregation of the righteous)”에 대해 설명하라.
1) 종말론적 개념들이다. 의인들의 모임(회중)은 하나님의 나라로 볼 수 있다.
2) 칼빈: grand principle, that God is the Judge of the world. 시편기자는 이것을 우리들이 생각하게 만든다.
11. 6절을 통해 시편 1편의 결론을 정리하시오.
1)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watches over). 의인들의 길은 하나님께서 돌보신다. 섭리(providence, 고난 중에도 돌보신다)
2) 악인의 길은 망한다. 과정에는 잘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마침내, 종말론적으로 망하게 된다는 것. will perish 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의지가 들어 있다. 자연스런 멸망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의지, 곧 심판에 의한 멸망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3)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선언하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 reflections(생각하기)
1) 악인들이 생기는 이유?
악을 행하는 것이 세상에서 형통하게 되는 길이니까.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
2) 주께서 의인의 길을 돌보시는 이유?
악인들의 쉽고 형통한 길을 거부함으로써 삶이 어려워짐으로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하다. 만일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시면 의인들이 망하게 될 것이다.
0. 결론: 어느 길을 따를까?
1) 의인의 길
2) 종말론적 신앙. 희망이 필요하다.
3) 현실적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4) 말씀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5) 종말신앙에 입각하여 웃으며 공부하고, 사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