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부산총회 찬반 논쟁
WCC 부산 총회의 찬반 논쟁에 관하여(1)
1. 찬성이든 반대든 뜨겁게 논쟁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신앙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죽은 신앙은 차지도 덥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논쟁을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하면서 논쟁하는 당사자들을 비웃는 태도야말로 비 신앙적인 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논쟁에 있어서 최종 목표는 성경적 진리를 찾아 참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승부에 집착하는 것은 비기독교적 태도다. 당파성으로가 아니라 혹시 한 쪽에서 간과하고 있는 진리가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먼저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3. WCC 총회를 유치한 우리나라의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에큐메니칼 정신, 곧 일치의 정신을 충분히 발휘해야 할 과제가 있다. 만약 이번 총회를 계기로 한국교회의 일치가 진작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이 더 심화된다면 그 일차적인 책임은 주최측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최측은 반대를 막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재삼재사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WCC 부산 총회의 찬반 논쟁에 관하여(2): 4 그룹
0. WCC 부산 총회에 대하여 우리나라 교계는 크게 네 진영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며 갈등을 벌여 온 것으로 보인다.
1. 첫째는 WCC 부산 총회를 책임지고 준비하는 한국준비위원회의 입장인데,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하여 반대를 표방한 보수측과의 연대를 모색해 왔다.
2. 둘째는 진보적 기독교를 대변하는 에큐메니칼 본영의 입장으로서, 총회의 성공보다는 WCC 정신의 수호에 더 비중을 두며, 반대측에 대한 경멸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3. 셋째는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 기독교 진영의 입장으로서, WCC 총회에 반대하지만, 내년에 있을 WEA 한국 총회를 주최해야 하므로 WCC 측과 일정한 연대를 기대하며 대화에 응해 왔다.
4. 넷째는 기독교보수교단협의회의 입장으로서, WCC의 정체에 대한 심각한 의혹을 가지고 있다. 부산 총회의 반대를 시대적 소명으로 여기고 가장 강력하게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5. 정리하면, 찬성과 반대의 양대 진영은 1과 3으로서 서로 연대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금년에 두 차례에 걸친 합의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합의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2와 4의 존재에 기인한 바 크다.
WCC 부산 총회의 찬반 논쟁에 관하여(3): 한국 교회의 지형
1. 이번 총회에 대한 4 그룹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A1: 지지(다수)
A2: 강성 지지(소수)
B1: 반대(다수)
B2: 강성 반대(소수)
2. A1, B1, 곧 지지든 반대든 다수에 해당하는 그룹은 이념적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반면, A2, B2, 곧 소수 그룹은 정치적이기 보다는 이념적이다. 항상 그렇듯이 정치적 집단은 이념을 희생하더라도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반면 이념적인 집단은 이념이 희생되면 얻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3. 금년 초 1월 13일에 전격적으로 발표된 “WCC 총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둘러싼 공방은 에큐메니즘 관련 한국교회의 지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1.13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4명의 한국교회지도자는 A1,A2,B1을 대표할 수 있는 분들이다.
4. 이 공동선언문이 발표된 직후 B2는 B1을 비난했다. A그룹과 타협함으로써 성경적 진리를 버렸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후폭풍이 A2진영에서 일어났다. 소위 에큐메니칼 진영이라 불리는 이 그룹은 1.13공동선언문에 대하여 맹렬하게 비판하며 이 선언문에 서명한 A그룹의 두 인사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 선언문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세미나를 열고 성명서들을 발표했다. 마침내 A2를 대변하는 서명자였던 NCCK 총무는 자신의 경솔했던 과오를 뉘우치며 사퇴와 함께 공동선언문의 파기를 선언했다.
5.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B1이 발끈했다. A1과의 연대에 차질이 생기고 B2의 비난에 궁색해진 B1은 A그룹을 비난하며 다시 WCC 부산총회에 대한 반대로 회귀했다. 이상의 사건들은 모두 금년 1월에서 2월, 한 겨울 추위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6. 그러나 B1측과의 공동선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A1은 끈기있게 노력하여 무더운 여름이 지날 무렵인 9월 12에 다시 "한기총과 WCC 제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거기서 양측은 1.13 공동선언문을 폐기하기로 결의한 바가 없다며 불씨를 살려 놓았다. 그러나 한 달여의 시일이 경과해도 더 이상의 진척이 없자, 10월 18일, B1측은 마침내 WCC 부산 총회의 개최를 반대하기로 결의했다.
7. 이상의 개략적인 진행 상황을 살펴보면 현재 WCC와 에큐메니즘 관련 한국교회의 지형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WCC 부산 총회의 찬반 논쟁에 관하여(4): 1.13 공동선언문
1. 이제 쟁점에 들어가 보자. 소위 “1.13 공동선언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빠르겠다.
2. 1.13 공동선언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합니다.
(1)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없음을 천명 합니다.
(2) 우리는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드릴 수 있는 행위임을 고백하고, 그러므로 초혼제와 같은 비성경적인 종교 혼합주의의 예배 형태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천명합니다.
2) 우리는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등 복음에 반하는 모든 사상을 반대합니다.
3) 우리는 개종 전도 금지주의에 반대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행 1:8)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대와 지역과 나라와 종교를 막론하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천명합니다.
4)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임을 천명합니다.
3. 기독교인이라면 초신자가 아닌 한 잘 이해하고 있는 평이한 내용이다. 다만 ‘개종전도금지’라는 말이 좀 생소한데, 이것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자기 종교로 개종하게 하는 목적의 전도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불교신자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면 안 되고, 천주교 신자에게 개신교로 개종하도록 전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개종전도금지주의 인데, 공동선언에서는 그것을 반대한다고 했으니, 즉 개종전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서명한 사람은 이전에 언급했듯이 A1, A2, B1 그룹의 대표자들, 곧 WCC 총회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김삼환(A1), NCCK 총무 및 WCC 총회 준비위원회 진행위원장 김영주(A2), 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B1), WEA 총회 준비위원장 길자연(B1), 이상 4분이다.
4. 위 공동선언문이 발표되자 A2 진영에서 격렬하게 반발하고, 공동선언을 파기했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바가 되었다. 그런데 8개월이 지난 9월 12일에 한기총(B1)과 WCC 제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A1) 사이에 다음과 같은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첫째, 2013.1.13. 선언문에 대하여 WCC 상임위원회는 폐기 결의한 바가 없다.
둘째, 신학자 4인(양측 2인씩 추천)을 선정하여 한국교회 앞에 우리의 신앙관을 발표하기로 하다.
5. 9.12 합의문은 양측이 모여 몇 시간의 토의 끝에 이루어졌는데, 이 모임에 참여하고 합의문에 서명한 분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한기총 측에서는 대표회장 홍재철, 길자연, 김성광, 이강평, 이건호, 이승렬 목사. WCC 상임위원회측에서는 상임위원장 김삼환, 김인환, 박경조 주교, 박종화, 손인웅, 이광선, 이영훈, 장상 목사.
6. 이상을 정리하면 1.13 공동선언문은 A1, B1 그룹에는 여전히 유효하며, B2도 그 내용에 반대할 이유가 없으므로, 오직 A2 그룹에 의해서만 배격되었다. A1과 A2는 함께 부산총회를 섬기게 되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총회를 연다는 것은 이상하기도 하고 위대하게 보이기도 한다. 또 A1과 B1은 기본 교리에 있어서 일치를 선언하면서도 한쪽은 주최하고 다른 쪽은 반대하고 있으니 묘한 일이다. WCC의 정체와 각 그룹들의 성격에 대하여 좀 더 알지 못하고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WCC 부산 총회의 찬반 논쟁에 관하여(5): A2의 입장
1. 1.13 공동선언문이 나온 후 1월 17일 NCCK 실행위원회는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 공동선언문을 ‘쓰레기와 같은 문서’라고 비난했다. 뒤이어 1월 25일 NCCK 회장인 김근상 성공회 주교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공동선언문은 WCC, NCCK, 에큐메니칼 정신에 위배된다고 밝히고, 특별히 정교회와 로마교회에 대하여 사과했다.
2. 뒤이어 공동선언문을 비판하는 기독교 진보계 단체들의 성명서가 이어졌는데, 그 중에서 1월 26일에 나온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전현직 회장단 및 임원일동 성명서’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WCC와 에큐메니칼 진영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내용으로 여겨진다.
“'종교다원주의'와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성서무오' 등 이번에 '공동선언문'이 "복음에 반하는 사상"으로 간단히 정죄해버린 사안들은 향후 인류가 공동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성찰할 주제들이다… 선언문 중에 특히 개종을 강요하는 전도와, 66권 성경의 무오를 주장하는 내용은 역시 21세기 인류 보편의 지성과 함께 할 수 없는 반지성적인 주장일 뿐이다.”(* 공동선언문에 나오는 ‘개종전도’를 여기서는 ‘개종을 강요하는 전도’로 다르게 기록하였음을 참고로 밝힙니다.)
3. 2월 4일,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던 NCCK 총무 김영주목사가 공동선언문에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를 선언했다. 당일 생명평화마당신학위원회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공동주최로 에큐메니칼 신학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주제는 ‘WCC 신학과 한국교회의 신학적 대응’이었다. 여기서 나온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없음을 천명합니다.” 라는 선언은 다른 종교들과의 평화로운 공존과 협력 자체를 위협하고 기독교의 배타주의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등 복음에 반하는 모든 사상을 반대한다"는 표현으로 인간의 지식과 사상의 보편적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3) WCC가 취하고 있는 “개종전도금지” 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다.
4) “성경 66권만이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서 무오하며, 모든 신앙과 행동의 절대적인 표준”이라고 선언하여, 자유로운 하나님의 계시 행위를 성경 66권안으로 가둠으로써, 배타적인 계시론을 보이고 있다.
4. 정리하면 에큐메니칼 진영(A2)의 메시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면 안 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면 안 된다.
2)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애 등은 복음에 반하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상의 보편적 자유에 속하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 특히 동성애는 단죄 받아야 할 죄악이 아니라, 소수자의 권리로 보아야 한다.
3) 타종교(정교회, 로마교회 포함)를 전도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인정과 존경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4) 성경 66권을 배타적이고 절대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WCC 부산 총회의 찬반 논쟁에 관하여(6): 종교다원주의
1. 이 논쟁의 사실상 핵심에 속하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살펴봄으로써 이 논쟁에 대한 해설을 마치고자 한다.
2. WCC는 종교다원주의라고 비판하는 B측의 반대에 대하여 A측은 그것은 오해일 뿐이고, 진실은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것은 정확한 해명이기는 하지만 친절한 해명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3. 그 이유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입장은 크게 3가지이기 때문이다.
첫째, 반대
둘째, 지지
셋째, 반대도 지지도 아님.
4.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반대도 하지 않고 지지도 하지 않는 제3의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B측은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단순히 반대 아니면 지지라고 여기고 WCC가 반대를 표명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지지하는가 보다 라고 성급한 판단을 한 것이다.
5. 여기에 대해 WCC측, 곧 A측은 영리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자 B측은 A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나 A측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지도 하지 않고 반대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6.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교단과 반대하는 교단이 다 회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WCC를 종교다원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넌센스에 속할 것이다. WCC 안에는 종교다원주의자도 있고 종교다원주의를 반대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WCC는 현재로서는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지도 못하고 배격하지도 못한다.
7. 이런 차제에 마침내 B2가 정곡을 찌르고 나타났다. 9월 5일, 한국보수교단협의회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낸 것이다.
“WCC가 종교다원주의가 아니며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입장을 제네바의 WCC 중앙위원회가 표명한다면, 보수교단협의회는 WCC를 반대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8. B2는 WCC에 대하여 강성반대측이기 때문에 이들이 반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도 WCC 부산총회를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 동안 B측과 연대하여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를 열망한 A1으로서는 참으로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결국 A측은 여기에 대해 반응하지 않았다. 아마 B2의 기대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9. B측이 WCC부산총회를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종교 다원주의다. B측은 예수 외에도 구원자가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를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이단으로, 교회의 뿌리까지 말살하려는 적그리스도의 노선으로 믿는다. 그러니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B측이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일 것이다.
10. B측은 WCC로부터 종교다원주의를 반대하며, 예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므로 끝내 부산총회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천명하였다.
11. 그러므로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WCC 제10차 부산총회는 상당히 시끄러운 가운데 진행될 것이다. 총회가 끝난 후에는 종교다원주의 문제로 교단과 교단 사이에 더 깊은 골이 파이고, 어떤 교단에서는 내부적으로 파열음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것이 이번 WCC 찬반논쟁의 핵심으로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