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한
요즘 검찰이 전두환 전대통령의 재산을 국고에 환수하기 위하여 땀흘리고 있어 흥미있게 티뷔를 시청하고 있는데, 내가 그의 이름을 제일 먼저 들은 것은 군 복무중이었을 때였다. DMZ 내의 어느 GP에 한 6개월 쯤 근무한 우리 소대는 1980년 5월을 맞이하여 드디어 철수 준비를 한 참 하고 있었다. 철책선 넘어 중대본부로 철수하면 곧 바로 휴가를 가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휴가복을 세탁하여 다리미질을 하고, 군화에 약 바르고 침을 뱉어 광도 내면서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중대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화를 받은 지피장인 소대장이 잠시 후 전 지피요원을 집합시켰다. 철수 계획이 취소되었단다. 이유는 광주 폭동으로 인하여 북한이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전시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소대장은 우리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다고 침통하게 말하면서 전 지피요원들에게 편지 봉투와 편지지를 나누어 주었다. 당혹해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대장은 계속 말했다. 알다시피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전멸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고향의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작성하라. 그리고 머리카락 일부와 손톱을 깎아서 봉투에 넣어라. 후방의 중대장이 보관하고 있다가 나와 여러분이 전사하면 고향으로 보내질 것이다.
우리는 전쟁이 터지면 1분 내에 다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교육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적의 5개 포대가 우리 지피를 향하여 정조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숨을 죽이며, 여기저기서 흐느끼며, 유서 겸 마지막 편지를 썼다. 나도 우리 어머니에게 그렇게 눈물과 함께 편지를 썼고, 머리카락과 손톱을 깎아서 편지와 함께 봉투에 넣고 봉하고, 소대장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수류탄과 실탄을 지급받고 하루 24시간 비상근무에 돌입하였다.
보초를 서고 있는데, 갑자기 다급하고 요란한 북한의 대남 확성기 선전이 시작되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남조선 군인 여러분, 여러분의 원수는 남쪽에 있습니다. 광주에 있는 여러분의 부모, 형제, 자매가 남조선 특공대원들에게 학살당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고향이 광주, 전남인 사람은 없습니까? 여러분은 즉시 총구를 광주로 향하여 전두한 도당을 처단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는 그의 이름을 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전은 짜를 전, 두는 머리 두, 한은 깡패 한, 이름 그대로 머리를 짜르는 깡패가 여러분의 부모, 형제, 자매를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실상 그때 전두한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군바리인 내가 그를 알 턱이 없었다. 그는 내가 지피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인물이니, 눈과 귀가 차단되어 있던 군바리가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북한이 풀이해준 그 이름은 너무 끔찍하여 두고두고 잊을 수 없었다. 내가 제대했을 때 그는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전두한이 아니라 전두환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북한은 왜 그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