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것 대신 싼 것을 사는 이유

경회성 2010. 5. 22. 11:51

잠 20:14,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나는 어릴 때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가장 비싼 것을 샀다. 왜냐하면 가장 비싼 것이 가장 좋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좋은 것을 두고 그보다 못한 것을 사는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제일 좋은 것 외에는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못살지언정 제일 좋은 것 외에는 눈이 가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서 오백원 짜리 물건 밖에 없어서 그것이 제일 좋은 것인줄 알고 샀다가, 후에 다른 동네에 더 좋은 천원짜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동네를 탓하며 다시 천원 짜리를 샀다.

 

얼마 지난 후에 나는 오백원 짜리를 사게 되는 한 가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오백원 짜리가 천원 짜리와 가치가 똑 같거나 더 나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똑 같은 물건을 이곳에서는 오백원 하는데, 저곳에서는 천원을 하는 것이었다. 그 경우에 당연히 오백원을 주고 이곳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오백원 짜리가 천원 짜리 보다 더 좋은 때도 있었다. 불필요한 것을 덕지덕지 붙여놓음으로서 보기에는 좋으나 실제로는 더 못한 물건들이 나올 때가 그런 경우였다. 이때는 오백원 짜리를 사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에 나는 오백원 짜리 물건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것을 살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너무나 평범한 이유였다. 나는 어릴 때 이런 일은 정말 받아들일 수 없고 내 인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양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것이 내 삶이 되어 버렸다. 분명 더 좋은 것이 있지만, 능력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더 못한 것을 사는 것이다. 없는 것 보다는 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후에 나는 분명히 열등한 물건인 오백원 짜리를 정말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 그것은 물건의 가치가 그 자체에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나에게 더 많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였다. 오백원짜리에 내가 정성을 기울이면 그것이 천원짜리 보다 훨씬 더 가치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성경에 물건 사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기록한 것이 있다. 잠언 20장 14절 말씀이다. 살 때는 요모조모 살피며 비판을 하다가 일단 사서 자기 물건이 되고 나면 그것을 좋게 본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건이나 사람에 대한 진실의 일면이 아닌가 한다. 내 것이 아닐 때는 비판적인 눈으로 살핀다. 그러나 나의 것이 되고 나면 좋은 눈으로 보게 된다. 좋은 눈으로 봄으로써 그 숨은 가치를 발견할뿐더러, 거기에 내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그것은 참으로 좋은 물건이 되는 것이다. 대상의 가치는 그 자체 보다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2003.10.5 처음 쓰고, 2010 4월 25일에 수정. 최태영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