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경회성 2009. 8. 14. 07:45

비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제목의 TV 프로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았다. 중간부터 보았으므로 앞부분은 놓쳤지만 감동받기에는 충분했다. 주인공은 젊을 때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었다.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동생은 날 때부터의 병으로 조로증에 난장이였다. 교통사고 후 10년간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세상을 살았단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그 시작은 물고기를 잡아서 요리를 하는 일이었다. 그는 한 쪽 다리가 없음에도 수영을 자유자재로 하며 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터득하여, 비장애인은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기 형제들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고 있는 노모를 근심시키지 않기 위하여 항상 밝은 얼굴로 살았다. 자기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동생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동생은 인터뷰에서 자기 형이야말로 최고라고 말했다. 주인공은 벌써 40대였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지역의 장애인협회 회장으로도 일한다. 출근할 때는 남들을 위해서 불편하게 의족을 끼지만, 평상시에는 목발을 짚는다. 결정적인 장면은 목발을 짚고 험준한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워낙 단련된 몸이라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빨리 산을 탈 수 있었다. 손 꼭대기쯤 올라가 앉아서 하늘을 보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묵상에 잠겼다.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직도 마음을 비우기가 힘들단다. 욕심이 끊임없이 올라와서 비우는 중이란다. 그 말을 할 때의 그의 표정과 묵상하는 모습은 수도자의 모습 그것이었다. 장애인으로서 세상에 살면 세상 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의 문제의식은 마음을 비우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신체적 건강도 아니고 물질적 풍요도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도 아니었다. 비움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비장애인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0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