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멘토>를 보고
(* 옛날에 쓴 글을 옮겨 왔음)
어제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 점심을 함께 먹고 돌아오다가, 단골 영화관인 보슈시네마에서 장안의 화제를 끌고 있는 <공공의 적>을 보려고 했는데, 마침 프로가 어제부터 <피도 눈물도 없다>로 바뀌어 있었다. 제목이 잔인해서 안보기로 하고 그냥 돌아오는데 웬지 허전해서 비디오 방에 가서 영화 한 프로 빌리기로 하였다. 무엇을 보기를 원하느냐고 아내가 묻길래 순간적으로 집중하여 내가 뭘 보고 싶었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더니, 마침 메멘토가 생각나서 말했더니, 아내는 메멘토와 함께 자기가 보고 싶은 것 하나, 뭐 고양이를 부탁한다던가 하는 것을 빌려 왔다.
집에 오자마자 메멘토를 보았는데, 대략 예상은 했지만, 역시 어려웠다. 요새 영화는 왜 이리 따라잡기 힘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다시 보기는 시간이 아까와서 그냥 대충 이해했다고 치고 정리했다. 다만 한 가지 깊이 남는 것은 기억력에 대한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이 결국 ‘나’라는 자아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 차이 중의 하나라는 것을. 동물들은 도대체 기억력이 신통하지 않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도 결국 기억력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영원히 기억하실 수 있음에 비하여 인간은 아주 중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부단히 보조수단들을 만들어 왔는데, 이것이 인간 문명의 중요한 한 부분이 아닌가? 인간이 만든 최첨단 기계인 컴퓨터가 바로 기억장치라는 사실이 이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하여튼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컴퓨터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큰 기억용량을 갖고 계신 분임이 틀림없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것을 전부 다 기억하시는 놀랍도록 사소하시기도 하신 분. 그러므로 우리가 장차 그분 앞에 서게 되면 그분의 놀라운 기억력 앞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직고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죄인인 우리가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자기 죄를 자백할 경우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을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신 후 다시는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으니 말이다. (20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