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대화
그런데 그 여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잠시 후 그 여인은 어느 건장한 남자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걷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낙심에 젖었다. 여인의 남편인 듯한 그 남자가 참 부러워졌다. 나는 곧 우울해졌다. 어째서 나에게는 저러한 행복이 허락되지 않을까?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광장동으로 가는 67번 버스를 탔다. 그들은 앞에 앉고 나는 뒤에 가서 섰다. 남편은 자리에 앉고 여인은 남편 앞에서 서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들의 대화하는 모습이 괴상망측하였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얼굴에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손과 손가락을 쉴새없이 들어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 그들은 청각장애자였던 것이다.
나는 그만 허탈감을 느꼈다. 이상적인 여인으로 생각하고 잠깐이나마 연모의 정에 빠지게 했던 그 사람이 농아였단 말인가? 이윽고 나는 그 매력적인 여인과 결혼하지 못한 나에 대해 약간의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부러움으로 바라보던 나의 눈길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이러한 변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열 손가락을 쥐었다 뜯었다 하면서 대화에 열중하였다. 그들은 오로지 마주보고 그렇게 대화하면서 한없는 행복한 웃음을 연방 터뜨리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걱정하는 빛 하나 없이 행복에 겨운 웃음을 웃고 있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있던 나는 이제 슬그머니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농아가 아닌 나보다 농아인 그들이 더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옛날 소지품을 정리하던 중 문득 발견하고, 아득한 기억을 더듬으며 옮겨 적었습니다. 이것은 1986년 10월 12일자 희성교회 대학부 회지인 <빚진 자>(47)에 게재된 저의 글입니다. 저는 그 당시 중고등부 및 대학부 교육전도사였지요. 물론 노총각이었고요)